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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이 고마워서

    靑靑한 산과 호수의
    초여름

    춘천 대룡산 · 의암호

    靑靑한 산과 호수의 초여름

    춘천 대룡산 · 의암호

    자연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익숙한 풍경도 조금만 각도를 달리하면 낯설고도 신선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런 자연의 특별한 표정을 만나고 싶어, 여름빛이 충만한 춘천으로 떠났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춘천의 산과 호수, 그 생기 넘치는 풍경을 마주하기 위해.

    패러글라이딩, 자연 속으로 뛰어들다

    춘천을 둘러싼 산들 가운데 가장 높은 해발 899m의 대룡산은 ‘춘천의 지붕’이라 불린다. 소양강 곁에 자리한 이 산은 매년 새해 첫날 시산제를 지내는 진산(鎭山)으로, 춘천 사람들에게는 ‘어머니 산’이라 불릴 만큼 친숙하고 특별한 존재다.
    산행길은 넓고 완만한 숲길로 이어진다. 햇살이 머문 잣나무 군락에는 벤치와 평상, 탁자가 놓여 있어 잠시 숨을 고르며 피톤치드를 충전할 수 있다.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에는 초여름 특유의 푸르름이 실려 있다. 그렇게 자연의 기운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활공장에 닿는다.
    ‘활공장’은 글라이딩 훈련을 하는 장소를 말한다. 춘천 대룡산은 영월 봉래산, 평창 장암산과 더불어 강원도를 대표하는 패러글라이딩 명소로 꼽힌다. 이곳에서는 동호회 회원만 비행이 가능하며, 비행 전 기초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동호회에서는 정기적으로 비행대회를 열기도 한다.

    대룡산 활공장은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북쪽으로는 명봉과 구봉산의 능선이 이어지고, 그 아래 소양호가 잔잔한 물결 위로 윤슬을 띠고 있다. 동쪽에는 가리산의 암봉 세 개가 우뚝 솟고, 남쪽에는 대룡산과 금병산, 서쪽에는 삼악산의 품이 아스라하다. 이곳은 운무 가득한 새벽과 붉게 물든 일몰이 특히 아름다워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패러글라이딩 체험은 철저한 기상 확인, 착륙장 상태 점검, 장비 확인을 마친 뒤 진행된다. 헬멧과 장갑, 하니스를 착용하면 비행 준비 완료. 가볍게 달려 파일럿의 지시에 따라 두 발을 땅에서 떼는 순간, 중력에서 벗어나는 오묘한 감각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등 뒤 글라이더가 바람을 가득 머금는 느낌이 전해지자, 두려움은 어느새 잦아들고 눈앞 풍경이 비로소 또렷이 들어온다. 초록빛이 짙어가는 산과 들, 호수가 시야 가득 펼쳐진다. 짜릿함과 평온함이 교차하는 하늘 위에서, 활공장에서 바라보던 것과는 또 다른 춘천의 자연을 만끽한다. 자연의 일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 자신을 느끼는 순간이다.

    배 위에서 즐기는 호수의 낭만

    ‘산악 도시’였던 춘천이 ‘호반의 도시’로 불리게 된 것은 의암댐 건설로 의암호가 생기면서부터다. 춘천의 서쪽에 자리한 의암호는 북쪽의 춘천호, 동북쪽의 소양호와 더불어 춘천을 낭만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의암호 나들길도 전국적으로 이름난 여행 코스지만, 풍경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카누를 타기로 했다. 물결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며 바라보는 풍경은 분명 육지에서와는 또 다른 표정일 테니까.

    춘천 물레길은 카누 전문 레저시설로, 의암호에서 1~2시간 내외의 다양한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자연생태공원길’, ‘물풀숲길’, ‘철새둥지길’, ‘중도종주길’, ‘스카이워크’ 등 총 다섯 가지 코스 가운데 중도유원지와 민물고기 자연양식장, 물풀 생태계길을 지나는 ‘물풀숲길’을 선택했다. 송암레포츠타운의 물레길 사무국에서 구명조끼를 챙기고, 나무 패들을 든 채 선착장으로 향했다.

    조용히 떠 있는 카누들. 푹신한 좌석에 앉아 천천히 패들을 밀자,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배가 나아갔다. 안전요원이 탄 모터보트가 멀찍이 뒤따르고, 노를 저어가며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기분은 그야말로 유영 같았다. 물가 풀숲에서는 새하얀 백로가 날갯짓을 하고,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이 투명한 호수를 수놓는다. 초록빛 숲과 하늘, 물결 이는 호수는 마치 수채화처럼 은은한 풍경을 그려낸다. 6월의 싱그러움이 온몸을 감싸고, 나지막한 물소리와 바람 소리, 햇살의 반짝임이 더없이 호사로운 순간을 선물한다.

    마음을 정화하는 산책

    의암호 한가운데에는 상중도, 하중도, 중도, 위도 네 개의 섬이 있다. 그중 하중도에는 자연 그대로의 수변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춘천대교를 건너 차로도 쉽게 들어설 수 있어, 도심에서 잠시 벗어나기 좋은 곳이다. 섬을 따라 걷는 둘레길, 숲속 산책로, 자전거길, 수변 데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곳곳에 놓인 쉼터와 의자, 테이블에 앉아 호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공원 끝자락에는 산과 호수를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낸 액자 포토존도 있다.

    이 섬은 ‘새들의 낙원’이라 불린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숲 사이사이로 울려 퍼지는 새소리에 발걸음이 절로 멈춘다. 둘레길을 따라 늘어선 버드나무들은 바람에 가지를 흔들며 햇살을 흩뿌리고, 잠자리와 이름 모를 곤충들이 나뭇가지 사이를 오간다. 이따금 큰 잉어가 지나가며 내는 물소리도 선명히 들릴 만큼 사방이 고요하고 평온하다. 포토존 앞에는 ‘외톨이 나무’라 불리는 벚나무 한 그루가 고요히 서 있다. 그 나무 곁 벤치에 앉아 바라본 의암호의 한가로운 풍경 속에서, 복잡했던 마음의 결들이 하나둘 풀어지는 기분을 느낀다. 밤이 내려앉은 호수는 낮과 또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춘천대교의 조명과 가로등 불빛이 물 위로 흐드러지며 은은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공의 빛조차도 자연 곁에서는 더없이 아름답게 빛난다. 그런 풍경 속에서, 하루의 끝이 조용히 찾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