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SeAH

PDF 보기

  • 세상

    AI 시대의 항해술,
    '디지털 문해력'

    AI 시대의 항해술, '디지털 문해력'

    글. 전승민 과학기술전문 저술가

    인공지능(AI)이 사람 대신 판단하고, 로봇이 일을 대신하는 세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직업상 많은 이들과 이런 변화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대중이 기술의 진보에 느끼는 불안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가장 흔한 우려는 ‘고도로 발전한 기계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과학기술적,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지만, 일반 대중이 이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대중의 직접적인 불안은 오히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적응’에 있다. AI를 비롯한 첨단 문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뒤처지는 것,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거나 현실적 문제에 부딪힐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적지 않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23년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 보고서에 따르면, 기술 변화와 자동화로 인해 2027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8,3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물론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도 있는데, 이는 6,900만 개 정도라고 한다. 단순 계산해도 약 1,400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새로 생기는 일자리들은 대부분 첨단산업 분야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종사자 수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 직업군에는 데이터 입력, 행정 비서, 회계 경리 등 예측 가능한 패턴을 가진 업무가 포함돼 있다. 이미 국내 금융권에서도 단순 상담 업무를 AI 챗봇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으며, 제조업 현장에서도 로봇 기술 도입으로 생산직 일자리가 감소하는 추세다.
    이는 단순히 몇몇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 생기는 차원을 넘어, 노동 시장이 요구하는 핵심 역량 자체가 완전히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구조적 전환 앞에서, 개인과 사회가 느끼는 불안은 증폭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지각 변동은 교육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미래 인재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자신조차 준비되지 않은 미래를 다음 세대에게 안내해야 하는 혼란의 중심에 서 있다.




    AI 시대, 정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첨단 ICT(정보통신기술)’ 관련 지식과 기술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프로그래밍, 일명 ‘코딩’을 배우는 열풍도 이와 같은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이런 기술은 일정 부분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직무에 꼭 필요한 역량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기계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람이 AI와 로봇에게 일을 올바르게 지시하고, 그 작동 원리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이다.
    디지털 문해력은 디지털 환경과 미디어의 특성을 이해하고, 정보를 정확하게 판단해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세부적으로는 △정보 판단 능력 △비판적 사고 능력 △디지털 환경에서의 의사소통 능력 △창의적 사고 및 문제 해결 능력 등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각종 스마트 기기를 활용하는 능력과 비판적 사고 능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디지털 문해력을 뒷받침하는 ‘기초 언어 능력’이다. 국어나 외국어, 특히 영어 역량은 디지털 시대의 도구 사용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간은 결코 혼자 일하지 않으며, 타인 그리고 기계와 소통하며 최적의 시너지를 낸다. 이 과정에서 올바른 의사소통 능력이란 그 자체로 생산성이다. 과거에는 이런 기본 없이 특정 기술을 몸에 익히면 전문가로 대우받았으나, 이제는 AI와 로봇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해내고자 하는지를 스스로 정의하고, 그 목적을 위해 주위와 소통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역량이 한층 더 중요해진다.

    정확하고 구조화된 '질문'이 AI를 움직인다

    이러한 역량의 중요성은 실무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Chat GPT 같은 ‘대화형·생성형 AI’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수년 전만 해도 AI를 활용하려면 컴퓨터 시스템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적 소양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AI 환경은 ‘누구나 키보드나 음성인식을 통해 언어로 지시, 혹은 질문하면 손쉽게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세상’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때 핵심은 ‘프롬프트(prompt)’, 즉 AI에게 주는 질문이다. 같은 AI 모델이라도 사용자의 질문 수준과 구체성에 따라 결과물의 질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단순히 ‘비건 화장품 마케팅 전략 좀 짜줘’라는 요청은 너무 막연하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프롬프트는 전혀 다른 결과를 이끌어낸다.
    ‘2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비건 화장품 신규 브랜드를 런칭할 예정이야.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초기 매출을 확보하기 위한 3개월짜리 소셜미디어(인스타그램, 틱톡 중심) 마케팅 전략을 제안해 줘. 예산은 월 500만원이고, 핵심성과지표(KPI)는 팔로워 수 증가와 웹사이트 트래픽으로 설정했어. 구체적인 콘텐츠 아이디어와 주간 포스팅 일정을 포함해, 보고서 형식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해 줘.’
    실제로 이와 같은 프롬프트를 그대로 Chat GPT에게 입력해봤다. 그러자 A4 수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불과 몇 초 만에 작성해 보여준다. 전략 목표, 타겟 분석, 각 소셜미디어 채널별 전략, 주간 스케줄, 심지어 콘텐츠 아이디어와 향후 확장 전략까지 제시했다. 구체적인 맥락과 조건을 제공했기에,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전략 초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구조화해 언어로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곧 AI를 움직이는 힘이다. 이 과정은 곧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사고력의 과정과도 일치한다.
    좋은 프롬프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행착오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AI에게 마음에 드는 결과를 얻기까지 수십 차례, 경우에 따라 수백 차례 프롬프트를 다듬어야 한다. 결국, AI를 잘 다루는 힘은 질문을 정교하게 만드는 사고력에서 비롯된다.

    다시 '기본기'로 돌아가야 할 때

    단순히 생성형 AI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문해력’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과정은 한 편의 논리적인 글을 쓰는 과정과 의외로 닮았다. 해결할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고(주제 설정), 원하는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조건을 설정하며(논거 제시), 명료한 언어로 전달하는(문장 구성) 능력은 모두 인문학적 사유의 산물이다.
    따라서 ‘AI 시대에는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단선적 사고보다, 기초 학문인 국어, 수학, 영어 등 기본기를 다지는 교육이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업무 기반을 다시 구조화하고, AI를 활용해 어떻게 더 빠르고 정확하게 사고력을 보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책을 통해 맥락을 파악하고,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구조화하며, 토론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고전적인 훈련이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AI가 ‘무엇’과 ‘어떻게’에 대한 답을 순식간에 내놓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왜’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최소한의 기술적 이해는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운전을 잘 하려면 자동차의 기본 구조를 알아야 하듯,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AI의 학습 원리, 컴퓨터나 로봇의 기계적 구조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AI가 어떤 데이터로 학습했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책임감 있게 활용하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
    ‘디지털 문해력’은 단순히 명령어를 외우거나 앱을 잘 다루는 단편적인 기술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인문학적 사유, 기술의 원리와 한계를 아우르는 융합적 지혜에 가깝다. 이 새로운 지혜를 갖춘 사람만이, 다가오는 미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