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캐의 발견

    혼자 서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기

    세아제강 창원공장 품질경영팀 최민석 검사원

    혼자 서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기

    세아제강 창원공장 품질경영팀 최민석 검사원

    회사에서는 다들 결과에 쫓기며 하루를 보낸다. 잘했는지 못했는지 끊임없이 확인받아야 하는 시간들 속에서,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은 흔치 않다. 최민석 검사원에게 볼링은 그런 시간이다. 레인 위에 서는 순간 오롯이 자신만 남는다. 그 고요한 긴장 속에서 또 하나의 자신을 마주한다.

    축구에서 볼링으로 바뀐 취미

    올해로 직장 생활 26년 차가 된 최민석 검사원에게도 사회 초년생 시절이 있었다. 먼저 취업한 친구들이 회사 동료들과 운동 동호회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부러웠던 기억이 마음 한편에 오래 남아 있었다. 이후 세아제강 창원공장에 입사해서는 직접 사내 축구 동아리를 만들어 동료들과 함께하는 운동 문화를 즐겨왔다.

    그러나 근속 연수가 쌓인 만큼이나 함께 뛰던 동료들의 연령대도 점점 높아지면서 경기를 위해 11명을 채우는 것조차 쉽지 않아졌다. 축구라는 운동이 무릎에 무리가 가고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커지다 보니 어떤 운동을 해볼지 고민하던 차에 떠오른 것은 바로 볼링이었다. 마침, 아이들도 하나둘 독립해 집을 떠나면서, 부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운동으로 딱 맞았다.

    “가까운 친구나 부부끼리 다섯, 여섯 팀 정도로 처음 시작했어요. 이렇게 부부가 같이 운동도 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약 7년 전, 세아제강 창원공장의 볼링 동호회 ‘공굴리기’가 발족했다. 창단식에는 선배들까지 대거 참석해 마치 축제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오래될수록 커지는 즐거움

    세아제강 창원공장과 포항공장 간 교류전은 가족들까지 함께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코로나19 전후로 한 차례씩 진행됐는데, 창원에서 먼저 1회전을 치르고 이듬해 포항에서 2회전을 가졌다. 그 자리엔 동료들의 배우자들도 참석해 열띤 응원전을 벌였다. “포항공장 분들이 우리 팀 응원 열기를 보고 부러워하더라고요. 여러 가족의 응원을 받으면서 레인 위에 서니까 진짜 대회에 참가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부부가 함께 즐기던 취미는 어느새 동료들과 화합하는 계기가 됐다.

    “레인에 올라가 있을 때는 조용히 해주는 게 매너라 다들 말이 없어요. 그런데 내려오면 ‘이게 잘못됐다’, ‘이렇게 고치면 더 잘 된다’라고 서로 조언을 주고받죠.” 지금까지 오랜 시간 함께한 동료들과의 관계는 이제 가족처럼 편안하면서도 친구처럼 끈끈하다. 이따금 야간엔 락볼링장을 찾아가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나누기도 한다.

    혼자만의 세계, 10개의 핀에만 집중하다

    최민석 검사원은 지금도 주 1~2회씩 볼링을 즐긴다. 평소 자주 찾는 볼링장은 레인 수가 많아 자리 잡기 수월하고, 연회비를 내면 개인 장비도 보관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단골이 됐다. 공을 차에 오래 싣고 다니면 온도 변화로 쉽게 상하기 때문에, 원정 경기를 나갈 때가 아니면 늘 같은 곳에서 보관된 장비로 연습하고 있다. 볼링 입문기에는 그저 멋으로 착용했던 손목 보호대도 이제는 없으면 안 될 정도로 몸에 익었다.

    보통 서너 시간 동안 다섯 게임을 치르는데, 평균 195점에 못 미치면 벌금을 내는 내기 게임으로 동호회 활동에 재미를 더한다. 물론 그렇게 모은 돈은 모두 동호회 운영비로 들어간다. “스포츠는 내기가 있어야 재미도 있거든요. 가벼운 부담이 매 투구에 집중하게 만드는 동력이 돼요.” 동호회 초창기에는 회원들의 평균 점수를 개인별로 기록하기도 했다. 모두가 195점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묶이지 않도록, 각자의 실력에 맞춰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든 그만의 방식이었다.

    평균 200점을 꾸준히 지키려 노력하지만 게임이 늘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점수가 안 나올 때 그는 웃으면서 장비 탓을 한다. “공도 기름을 먹으면 수명이 있어서 몇 게임 지나면 바꿔줘야 하는데, 교체 비용이 부담스러워 자주 바꿀 수는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 탓보다 장비 탓을 하는 게 오히려 볼링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안 되는 이유를 자기 탓으로만 돌리면, 옛날에 잘 쳤던 감각까지 잊어버리거든요.”

    나만의 길을 찾다

    최민석 검사원은 와류탐상검사와 초음파탐상검사 장비를 운용하며 비파괴검사를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약 10년 만에 재개된 원자력 관련 제품 검사를 전담하고 있다. 평소 다루던 스테인리스 제품과는 다른 영역인 만큼, 한층 무거운 책임감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와류탐상검사는 전기 신호로 제품 외부의 결함을 찾고, 초음파탐상검사는 초음파를 쏘아 파이프 내부의 결함을 검출한다. 두 검사 모두 제품을 손상시키지 않은 채 내외부 상태를 판단해야 하는 일이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기준점을 잡는 ‘세팅’ 과정이다. 외부 검·교정 기관에서 받은 표준 시편을 기준으로 장비를 세팅하고, 그 기준에 맞춰 합격과 불합격을 가른다. “보이는 결함이면 보이는 대로 맞추면 되는데, 안 보이는 결함을 신호로만 판단해서 세팅값을 맞춰야 하니까요.” 판단이 잘못되면 고가의 티타늄, 특수합금 파이프 전체를 폐기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한 번의 폐기가 회사의 손익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는 회사에서의 일과 취미인 볼링의 공통점을 이렇게 짚었다. “검사할 때마다 저 나름의 기준을 세워 혼자 판단해야 하는 것처럼, 레인에 올라가도 결국 스스로와 싸우는 거예요.” 검사할 때 보이지 않는 결함을 신호로 읽어내듯, 레인 위에서도 그는 매 투구마다 감각만으로 자신의 상태를 가늠한다.

    기꺼이 변화를 마주하다

    볼링을 시작한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을 묻자, 그는 가정의 변화를 먼저 이야기했다. 자녀들이 독립한 뒤 아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함께 볼링을 치기 시작하면서는 함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 됐다. “때로 집에서 다투었어도, 볼링장을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면 자연스럽게 풀려요. 핀에 공이 맞는 소리, 누가 스트라이크 치는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져요. 자녀들도 가끔 들러 함께 어울리고 부부 동반으로 같이 게임을 즐기면서, 우리는 그날 하루치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옆 레인에서 종종 마주치는 어르신들로 구성된 팀을 보면서, 그는 동료들과 ‘우리도 언제 저기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레인 위에 서 있는 그 모습이, 그에게는 막연한 부러움이자 소박한 목표다. 그는 모든 세아인이 열정을 가지고 각자의 목표에 도전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우리가 활동을 멈추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열정이 식어서인 것 같아요. 옆 레인의 어르신들처럼, 저도 나이를 핑계로 멈추는 대신 계속 레인 위에 서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