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미학

    마치 영화처럼 서사가 흐르는 건축

    영화의전당

    마치 영화처럼 서사가 흐르는 건축

    영화의전당

    다가오는 9월, 부산은 온전한 ‘영화의 도시’가 된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 축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 부산은 세계 각국의 영화인과 관객들로 북적이며 도시 전체가 거대한 영화 무대로 변한다. 개막식과 폐막식을 비롯해 국내외 감독과 배우들의 야외 무대 인사, 거장 영화인을 조명하는 마스터클래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영화의전당이 있다. 영화의전당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징적인 주 무대이며, 동시에 건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품을 담은 또 하나의 작품, 부산국제영화제를 앞둔 영화의전당을 미리 찾아가 봤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곳

    영화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공간. 영화의전당은 부산국제영화제를 가능하게 하는 무대이자, 부산을 ‘영화의 도시’로 기억하게 하는 이유다.

    영화의전당은 개막식과 폐막식이 열리는 야외 극장을 비롯해 주요 상영관과 행사 공간을 갖추고 있다. 영화제 기간 이곳에서는 레드카펫을 밟는 세계적인 영화인들의 모습부터 관객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토크 프로그램, 밤늦도록 이어지는 영화 상영까지 축제의 가장 뜨거운 순간들이 펼쳐진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순간은 레드카펫 행사다. 개막식에 앞서 국내외 감독과 배우, 제작자, 심사위원 등 세계 영화인들이 레드카펫을 걸으며 관객과 취재진을 만난다. 이 짧은 순간은 영화제를 찾은 영화인들을 환영하는 세리머니이자, 영화제의 개막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무대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와 환호 속에서 영화인들이 관객과 인사를 나누고 포토월에서 기념 촬영을 진행하는 그 순간, 영화의전당 야외광장은 화려한 축제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레드카펫이 끝나면 참석자들은 곧바로 개막식이 열리는 야외극장으로 이동한다. 개막식에서는 개막 선언과 올해의 심사위원 및 초청 영화인 소개, 공로상 시상, 개막작 상영 등이 이어지며 열흘간 이어질 영화 축제의 막을 올린다.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은 약 4,000석 규모를 갖춘 국내 최대 야외 영화 상영 공간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징적인 무대이자 세계 영화인들이 가장 먼저 부산을 만나는 공간이다.

    살아 있는 문화 플랫폼

    2011년 개관한 영화의전당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용관으로 출발했지만, 영화제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영화 상영과 공연, 전시, 교육, 아카이브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이 어우러지는 이곳은 오늘날 부산의 랜드마크이자 살아 있는 문화 플랫폼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늘연극장, 중극장과 소극장, 시네마테크, 인디플러스 등에서는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고전영화가 상영된다. 특히 인디플러스는 부산지역 최초의 독립영화전용관으로, 국내외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꾸준히 소개하며 지역 영화문화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또한 영화의전당에서는 연극, 대중음악, 클래식, 오페라, 뮤지컬, 무용 등 다양한 공연이 연중 개최된다. 매년 1월 야외극장에서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를 대형 스크린으로 생중계하며, 국내외 연극 작품과 거리 공연이 펼쳐지는 부산국제연극제, 다양한 장르의 무용단이 참여하는 부산국제무용제, 여름철 야외극장에서 열리는 한여름 밤의 콘서트 등을 마련해 시민들에게 일상 속 문화 향유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영화의전당의 또 다른 역할은 교육이다. 영화 제작 과정과 스태프의 역할을 체험하는 영화 제작 교실,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상 제작 교육, 영화 읽기 강좌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미래 영화인을 양성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 대상 ‘백스테이지 투어’는 무대감독과 함께 공연장 내부를 둘러보며 조명과 음향 장비를 직접 체험하고 무대 뒤 공간을 탐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영화의전당은 영화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아카이브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도서관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과 영화 관련 서적, 시나리오, DVD 등 수만 점에 이르는 자료가 비치돼 있으며, 관람객들은 이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영화의 역사와 문화를 축적하고 공유하는 지식 플랫폼인 셈이다.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영화를 만나고, 공연을 즐기고, 새로운 영감을 얻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 문화 공간. 영화의전당은 이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작품이 된 공간

    영화의전당은 빼어난 조형미로 부산을 대표하는 건축예술이기도 하다. 2005년 국제지명현상설계에서 오스트리아의 건축 그룹 쿱 힘멜브라우(Coop Himmelblau)사가 제안해 당선된 해체주의 양식의 건축물로 부산의 대표 관광지이자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전체적으로 영화의전당은 하늘을 형상화한 거대한 지붕, 산과 언덕을 닮은 형태, 그리고 넓은 광장이 어우러져 하나의 도시 풍경을 이루도록 설계됐다. 정형성과 대칭을 벗어난 해체주의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하며, 직선과 곡선, 기울어진 면들이 역동적으로 교차하며 강렬한 조형미를 만들어낸다.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영화의전당을 상징하는 거대한 지붕 ‘빅루프(Big Roof)’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길이 약 163m, 폭 61m 규모의 이 지붕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구름을 연상시키며, 하나의 기둥인 ‘더블콘(Double Cone)’이 거대한 지붕을 지탱하는 혁신적인 구조를 구현했다. 특히 기둥 없이 길게 뻗은 외팔보(캔틸레버) 구간은 세계 최장 길이의 캔틸레버 구조로 인정받아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빅루프와 야외극장 지붕인 스몰루프(Small Roof)에는 4만2천여 개의 LED 조명이 설치돼 있어, 밤이면 거대한 미디어 캔버스로 변신한다. 수영강, APEC 나루공원과 어우러진 야간 경관은 부산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지난 6월 BTS가 신곡 ‘아리랑’을 발표하며 ‘BTS THE CITY ARIRANG – BUSAN’으로 부산 전역을 축제의 공간으로 만들었을 때, 영화의전당 지붕은 ‘KEEP SWIMMING’과 연결된 ‘수영하는 캐릭터’로 채워지며 세계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빅루프 자락이 끝나는 지점 바로 아래 광장에 가로 2.6m, 세로 4.6m, 높이 10.2m의 스테인리스 조형물이 우뚝 서 있다. 한쪽에서 보면 갈매기, 다른 쪽에서 보면 영락없는 여인의 모습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변신하는 이 작품은 독일의 조각가 랄프 산더(Ralf Sander)의 ‘여인-새-변신’이라는 작품이다. 갈매기의 날개는 마치 백색 한복의 소매를 연상시킨다.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형상으로 인식되는 이 작품은, 우리가 갖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상징적 건축, 창조적 공간

    영화의전당을 설계한 쿱 힘멜브라우사의 대표인 울프 프릭스(Wolf D Prix)는 당시 부산의 도시 슬로건이었던 ‘다이내믹 부산(Dynamic Busan)’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거대한 지붕 아래 넓은 야외 공간에서 시민과 관람객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으며,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를 통해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첨단 건축기술과 미적 상상력이 더해진 이 건물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징이자 부산을 대표하는 현대 건축의 아이콘이며, 영화와 예술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구현하는 창조적인 공간임에 분명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또 하나의 서사를 만들고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다가올 부산국제영화제의 시간, 그리고 계속 쌓여갈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