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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세상과 기업을 아름답게 하는
정의(正義)글.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세상과 기업을 아름답게 하는 정의(正義)
글.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약 2,500여 년 전, 공자가 어느 고을을 방문했다. 고을 원님은 공자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고을에는 한 정의로운 청년이 있지요. 그의 아버지가 남의 양(羊)을 훔치는 것을 보고, 청년이 이를 관가에 고발했습니다." 이에 공자가 한마디했다. "내가 사는 곳은 다릅니다. 그런 경우,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숨기고, 아버지 또한 아들의 잘못을 숨깁니다."
포드(Ford) 사는 한때 세계 최고의 자동차 제조사였다. 1970년대 포드 핀토(Pinto)는 미국에서 잘 팔리는 소형차였으나, 후방 충돌 시 연료탱크가 쉽게 폭발하는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었다. 이로 인해 탑승자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화상을 입는 사고가 500건 이상 발생했다. 한 피해자가 포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오랜 재판 끝에 내부 고발자가 마침내 진실을 폭로했다. "포드의 엔지니어들은 폭발 위험성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많이 팔린 핀토를 회수해 보강장치를 다는 리콜 비용보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개별적으로 보상하는 편이 회사에 금전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경영자의 판단이 있었습니다." 이 증언에 배심원들은 격분했고, 결국 포드는 패소했다. 250만 달러(약 30억 원)의 손해배상금 외에도, 1억 2500만 달러(약 1,500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징벌적 배상금이 부과됐다. 이 사건으로 포드는 정의롭지 못한 비윤리적 기업이라는 오명을 얻었고, 이후 사세는 급격히 쇠락했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환경 정의, ‘정당한 죗값’을 추구하는 사법 정의 등 분야에 따라 그 모습은 달라진다. 그렇다면 근로자, 주주, 경영자, 공급망 종사자,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힌 ‘기업’에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경영자와 임직원이 추구해야 할 정의는 무엇이며, 기업은 왜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가 등의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 주체로서, 사전적 정의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 판매하는 조직’이다. 이윤은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기업의 존재 이유’로 오랫동안 당연시됐다. 그러나 오늘날 ‘이윤 추구는 정의로워야한다’는 관점이 대중과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화두가 됐다. 그 배경에는 자본주의 부작용의 심화, 지구 온난화 및 환경 파괴 그리고 기업 영향력의 폭발적 확장이 있다.
‘정의(正義; Justice)’가 무엇인지 간결하게 정의(定義; Definition)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위 사례와 같이, 고을 원님과 공자는 서로 다른 ‘정의’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학자와 선각자들이 정의에 대해 논하고 주장했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는 저서 『JUSTICE』를 통해 정의의 판단 기준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전통적 공리주의.
둘째. 평등한 위치에서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셋째. 사회공동체 대다수의 윤리적 판단을 기반으로 한 미덕과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개입된다"고 말하며, 사회 구성원의 건전한 가치 기준과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정의는 단정적으로 규정지을 개념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윤리관과 가치관에 따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성찰해 나가야 할 ‘화두’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정의’가 존재한다. 공정한 분배를 중시하는 경제 정의, 평등한 정치적 지향을 추구하는 정치 정의, 기업은 처음부터 특정한 목적을 가진 의식적 조직체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기업의 본질은 ‘주주 이익 추구 단체’라 인식됐다.
이 개념은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케인즈와 함께 20세기 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 자유시장주의자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의 주장으로 더욱 널리 인정받았다.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 창출’이라고 확고하게 주장했다. 이윤이 있어야 주주에게 배당을 지급하고 새로운 투자와 양질의 제품 및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며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닉슨과 레이건 등 보수 자유주의의 정권 경제정책의 바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주 이익 중심’의 사고로 넘는 새로운 이론이 1999년 미국 학계에서 제기됐다. 바로 ‘생산 공동체설(Team Production Theory)’이다. 이 이론은 기업이 주주뿐만 아니라 근로자, 채권자, 경영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는 관점이다. 주주는 자본으로, 근로자는 노동으로, 경영자는 자신의 전문성을 투입해, 창출된 이윤은 공정하게 분배돼야 한다는 정의의 관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이러한 정의 인식은 2019년 8월, 아마존, GM, 애플, 시스코, 월마트 등 200여 명의 주요 대기업 CEO로 구성된 단체인 BRT(Business Roundtable)가 발표한 ‘기업의 목적에 관한 입장’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이들은 기존의 ‘주주 우선’ 원칙에서 벗어나, 공급망, 임직원,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하는 경영을 실천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는 기업이 추구해야 할 정의에 대해 획기적인 시각의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이제 정의의 관념이 깃든 기업의 존재 이유는 단순한 이윤이 아니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2000년 대 초, 그의 저서『MANAGEMENT』에서 "이윤은 기업의 목적이나 동기가 아니라, 의사 결정 과정에서 타당성 판정 조건이자,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보험이며, 기업 존속의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기업은 이윤을 내야만 비로소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며, 이윤은 기업이 더 나은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단이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그는 기업의 존재 이유가 내부가 아닌 외부, 즉 고객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객의 욕구를 인식하고,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기업의 존재 이유이며, 그 정의는 바로 ‘고객’이라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기업의 사회적책임(CSR)과 ESG 경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가운데, MZ 세대는 ‘ESG 소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정의로운 기업’, 쉽게 말해 ‘착한 기업’이 아니면 그들에게 상품을 팔 수도 없고, 그들의 호감을 얻을 수도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2024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이 특정 기업에 비호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준법 및 윤리 경영 미흡’이었다. 포드 핀토 사례는 윤리경영 부재의 결과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윤리경영은 사회적 윤리를 경영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단지 법령을 준수하는 것을 넘어, 윤리와 도덕까지 기업 경영에 반영하겠다는 약속이 ‘준법경영(Compliance)’이다. 결국 준법경영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윤리적 기준을 조직 전반에 내재화하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면 기업 호감도와 신뢰도가 상승하고, 이는 매출 증대와 이윤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가져온다.
2016년 ‘김영란법’이 시행될 당시, 현대경제연구원은 이에 대한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이 OECD 평균 이상의 청렴한 나라라고 인식될 경우, 경제성장율은 0.65%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이다.실제로 법 시행 이후 한국과 한국 기업의 대외 신임도가 높아져 경제성장에 긍정적 효과를 낸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 말했지만, 세상에 아름다운 것은 많다. 자연, 예술, 인생, 인체, 진리, 행복 그리고 사랑 등이다. 기업에게 있어 아름다운 단어는 ‘이윤’이다. 단, 그 이윤이 윤리경영에 기반한 ‘정의로운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면 더욱 아름답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피라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