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찰하다

    불의 연금술사

    글. 홍완식
    서울시립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

    불의 연금술사

    글. 홍완식 서울시립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이끄는 발굴팀에 의해 투탕카멘 왕의 무덤이 발견됐다. 이곳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발견 이후 거의 한 세기 가까이 과학자들을 미궁에 빠뜨린 물건이 하나 있었다. 휘황찬란한 황금을 소재로 만든 수많은 부장품들 사이에서 조용히 자태를 드러낸 철제 단검이었다.

    현대의 통념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단검은 놀랍게도 금으로 장식된 손잡이와 칼집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 30 cm 남짓한 길이에 결코 위압적이지 않은 모습을 한 이 단검을 만들어 낸 철은, 마치 금을 자신의 발 아래에 거느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대 이집트의 소년왕 투탕카멘이 재위했던 시기는 기원전 14세기이다. 학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와 주변 지역에서 철기 문명이 시작된 시점보다 200년 이상 앞선 시절에,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철을 구할 수 있었단 말인가.

    2016년 이후 이탈리아 및 일본 연구팀이 정밀한 화학적 분석을 진행한 끝에, 차츰 그 비밀이 밝혀졌다. 단검의 몸체를 이루고 있는 철의 출처는 흔히 알려진 자철광이나 적철광이 아닌 운석이었다. 운석 특유의 높은 니켈 함량과,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의 건조한 환경 덕분에 녹슬지 않고 예리한 날을 그대로 간직한 채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냈다. 마치 현대 과학기술 문명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침내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인류는 금속의 제련법을 알아내기 이전인 신석기 시대부터 이미 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별똥별이 환한 빛의 꼬리를 끌며 떨어질 때, 대기에 의한 마찰열은 천혜의 용광로가 된다. 당시 인류가 피우던 화톳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온에서, 마법처럼 잘 정련된 철-니켈 합금이 지구 곳곳에 뿌려졌다. 인류는 이를 주워 정성껏 불에 달구고, 돌로 두들기고 갈아내어 구슬이나 단검 같은 장신구를 만들어 높은 이들에게 바쳤다. 이 시기의 철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한, 땅에서는 절대로 구할 수 없는 소재였다. 그렇기에 금보다 더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고,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지녔다. 하늘이 내려준 금속을 손에 쥔 순간,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철은 힘이자 서사이며, 불은 그 서사를 펼쳐내는 언어라는 것을.

    청동기 시대, 구리를 제련하던 기술자들은 피처럼 붉은빛이 도는 돌멩이 몇 개를 도가니 속에 던져 넣었다. 이 돌은 이내 녹아 불순물을 잡아채고 거품처럼 위로 떠올라 엉겨붙었다. 덕분에 잘 정제된 구리물이 아래에 고여, 질 좋은 구리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반전은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이 퍼석한 거품 덩어리를 눈여겨본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폐기물처럼 보이는 이 슬래그를 버리지 않고 가져가 망치질을 해보았다.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모래 같은 불순물은 빠져나가고, 슬래그는 점차 단단해졌다. 이윽고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변신하듯,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인 줄만 알았던 은회색의 신비한 금속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연히 하늘을 쳐다보며 별똥별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인류는 마침내 땅에서 철을 손에 넣게 됐다.

    그러나 철은 쉽사리 인류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청동에 비하면 약해 보였고, 금세 시뻘겋게 녹이 슬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뭄에 콩 나듯, 청동보다 훨씬 단단하고 잘 부러지지 않는 조각들이 우연히 만들어졌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이 조각들은 그때까지 알려진 어떤 금속보다도 가볍고 튼튼하며 예리한 무기와 도구를 가능하게 했다. 처음에는 이를 그저 '좋은 쇠'라고 불렀으나, 차츰 사람들은 이 금속을 보면서 '굳건히 버틴다', '확고하게 지킨다'는 뜻의 고대어 'stak-'를 떠올렸다. 이 말은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변화해 오늘날 영어로 강()을 뜻하는 'steel'이 되었다.

    철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극소수의 선구자들은 불과 망치를 벗 삼아 철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매달렸다. 근대 과학이 싹트기 전, 우주 만물이 물ㆍ불ㆍ흙ㆍ바람으로 이뤄졌다는 4원소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불의 정화 작용이 철을 순수하게 만들어서 더 좋은 철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철 속의 불순물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리라 여겨지는 갖가지 물질을 섞었고, 주술을 포함한 온갖 방법을 시도했다. 연료로 쓰던 숯에서 스며든 미량의 탄소가 철의 성능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어느새 철을 다루는 기술은 마법과 같은 신비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철을 다루는 기술은 필연적으로 연금술과 맞닿아 있었다. 연금술사들의 목표는 단지 값싼 금속으로 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금으로 상징되는 영원불변의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최고의 철을 만들 수 있는 원리를 탐구하는 일 또한 연금술과 궤를 같이했다. 마땅한 측정 장비조차 없던 시절, 철의 장인들은 오감을 총동원해 '좋은 쇠'가 탄생하는 순간을 체득해 나갔다. 조선시대의 한 대장장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쇠가 붉다 해서 다 같은 붉음이 아니니, 고을의 바람과 숯의 냄새까지 합쳐서야 비로소 그날의 철이 된다." 불과 몇 초 차이로 갈리는 상전이와 소수점 이하 셋째 자리의 조성 차이를, 불꽃의 결을 읽어내는 눈빛과 망치를 쥔 손끝의 미세한 떨림으로 가늠해야 했던 인류와 철강의 끝없는 힘겨루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에 나오는 유명한 판결이 떠오른다. "심장에 가까운 살을 도려내되, 살 이외에 피 한 방울도 나와서는 안 되고, 베어내는 살의 무게도 1파운드에서 털끝만큼이라도 많거나 모자라서는 안 된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 앞에서, 평생 돈만을 좇아 살아온 샤일록은 절망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만약 그 법정의 구경꾼 중에 철을 다루는 장인이 있었다면, 그는 조용히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른다. 묵묵히 작업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그의 머릿속은 이미 새로운 과제에 대한 도전 의지로 가득 찼을 것이다.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철의 요구사항을 평생 맞춰 온 그에게, 이는 불가능이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의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이처럼 극도의 정밀함을 요구하는 도전은 셰익스피어 시대로부터 400여 년이 흐른 오늘날, 레이저 수술과 초정밀 측정ㆍ분석 장비, 3차원 스캐너 등의 기술로 꽃피웠다. 철은 핵심 부품을 구현하는 특수강으로 진화해, 이러한 첨단 기술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오늘날의 디지털 트윈과 자율 최적화 또한 결국 인간의 맥락 위에서만 빛을 발한다. 데이터를 '정답'과 '오답'으로 라벨링한 사람은 누구인가. 양품과 불량의 경계를 처음 그은 이는 누구인가. 인공지능은 우리가 쌓아 온 경험의 지도 위를 달릴 뿐, 그 지도의 첫 선을 긋는 일은 언제나 사람의 몫이다. 그 경험은 사회와 경제로 환원된다. 다리의 수명, 선박의 안전, 자동차의 경량화, 풍력 타워의 피로한계, 철도 레일의 소음과 마모까지-이 모든 것은 '털끝만큼'의 오차와 '피 한 방울'의 공정 불량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장인정신, 그리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창의성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축적된 시행착오와 노하우는 마침내 모두를 위한 공공재가 된다. 국가 경쟁력을 숫자로 말할 때, 그 숫자 뒤에는 현미경 아래 페라이트와 마르텐사이트의 경계를 읽어낸 기술자의 안목과, 겹겹이 쌓인 장인들의 고뇌가 있다.

    불은 여전히 변덕스럽고, 철은 여전히 까다롭다. 수많은 데이터와 요인 너머에는 아직도 인간의 손이 쉽게 닿지 않는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산업의 뼈대를 세우는 일,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오늘도 온도와 시간을 읽고 미량 원소의 조성을 다독이는 사람들. 끊임없이 불확실성과 마주하며 책임을 자신의 이름으로 감당하는 이들의 눈빛은 지금도 번뜩인다. 4차 산업혁명은 도구의 종류를 바꾸었을 뿐, 그 눈빛의 의미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인공지능과 초정밀 장비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그 도구에 무엇을 묻고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결국 인간의 창의력이 결정한다.

    4차 산업혁명의 파도 속에서 기술자의 존재감은 오히려 더 또렸해졌다. 자동화가 개입의 빈도를 줄일수록, 사람은 '언제 개입하지 않을지'를 판단해야 한다. 숫자를 믿되, 숫자를 낳는 맥락을 더 깊이 신뢰하는 사람. '왜'라는 질문을 미루지 않고, 실패를 공론으로 끌어올리며, 타인의 경험을 자신의 손끝으로 재창조해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사람.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런 이들을 불의 연금술사라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