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틈 없이 데이터가 흐르는 현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게, 퇴근 후의 시간은 단순한 그 휴식 이상이 필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VNTG 이재훈 매니저에게 국궁은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취미다.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숫자와 신호가 사라지고, 145미터 너머의 과녁만 남는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온몸과 정신이 동시에 움직이는 운동. 그 긴장과 집중의 균형이 그를 다시 활을 잡게 만든다.
국궁 취미를 시작하게 된 계기
어린 시절의 관심이 성인이 되어 다시 이어지다
이재훈 매니저와 활의 인연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본 양궁 선수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았지만, 예체능에 대한 현실적인 부담으로 마음에만 간직해야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고, 스물여덟이 되던 해 실내 양궁장을 찾으며 다시 이어졌다. 그곳에서 선수 출신 코치를 만난 뒤 대학 양궁부에서 활동하는 등 약 8년간 양궁을 해왔다.
이후 고양으로 이사하면서 양궁장을 찾기 어려워지자, 그는 동네 국궁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언젠가는 국궁도 배워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습니다. 마침, 집 근처에 좋은 곳이 있어 찾아갔고, 좋은 분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국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양궁과는 또 다른 국궁만의 방식
언뜻 양궁과 비슷해 보이는 국궁은 그 방식이 크게 다르다. 우선 시위를 당기는 방법부터, 양궁은 세 손가락으로 시위를 당기지만 국궁은 엄지에 끼우는 깍지를 사용한다. 무게중심을 잡는 방식도, 활을 쥐는 방법도 다르다. 무엇보다 국궁의 과녁은 145m 거리에 있다. 조준 장치도 없이 온몸의 감각으로 그 거리를 가늠해야 하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운동처럼 보이죠. 하지만 만화 <유미의 세포들>에서 주인공 몸속의 세포들이 치고받고 바삐 움직이는 것처럼, 국궁을 하는 동안 제안에서는 전신의 근육이 움직이고 엄청난 집중력이 발휘됩니다."
국궁이 만들어 주는 몰입과 집중
국궁장에 도착한 후, 이재훈 매니저만의 루틴이 시작된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활에 줄을 끼운 뒤 균형과 화살 상태를 꼼꼼히 확인한다. 사대에 올라서면 먼저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첫 번째 순(라운드)은 몸을 늘려준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쏜다. 두 번째 순부터는 머릿속으로 만들고 싶은 자세를 그리며 한 발 한 발 세팅해 나간다. 그렇게 1~2시간이 지나고, 3시간쯤 되면 몸이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이 마무리 신호다.
"가장 큰 국궁의 매력은 몰입감입니다. 활을 당기고 호흡을 고르며 과녁을 바라보는 그 짧은 시간에는 다른 생각이 사라져요. 머리가 복잡할 때도 국궁장을 찾고 나면 정리되는 느낌이죠."
이재훈 매니저는 VNTG 데이터포지팀에서 세아창원특수강과 세아베스틸(군산)에서 발생하는 데이터(PLC, L2, MES)를 수집·운영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데이터를 다루는 일은 높은 집중력과 정밀도를 요구하고, 작은 오류 하나가 전체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긴장을 놓기 어렵다. 이처럼 긴장감이 이어지는 업무 이후, 활 한 발이 만들어내는 '비워짐'은 어떤 휴식보다 분명한 해소의 시간이 된다.
물론 결과가 언제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과녁을 빗나갈 때의 아쉬움도 있지만, 다음 연습에서 그 원인을 보완해 다시 맞혔을 때의 성취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꾸준한 반복이 만들어낸 성장
마지막 한 발로 이뤄낸 첫 승단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 이재훈 매니저는 작년 11월 첫 승단 시험을 말했다. 국궁 1단이 되기 위해서는 총 45발 중 24발을 맞혀야 하는데, 마지막 한 발을 앞두고 23발을 성공한 상황이었다. 연속 적중이 이어질수록 긴장감은 더 커지고, 오히려 몸이 굳기 쉬운 순간이었다. 그는 집중을 유지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고, 과녁을 향해 마지막 화살의 시위를 당겼다.
"마지막 남은 집중력과 힘으로 시위를 놓은 순간, 화살은 '탕!' 소리를 내며 과녁에 꽂혔고, 관중 깃발이 펄럭였어요. 그 장면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현재는 2단 승단을 목표로 열심히 연습 중입니다.
국궁이 알려준 꾸준함의 가치
그는 국궁장에서 막내다. 국궁을 즐기는 사람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보니 일반적인 동호회와는 다른 차분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신입 회원은 전담 코치에게 기본기부터 배워요. 처음 한두 달은 '주살'이라 불리는 연습용 화살로 기초를 다지는데, 실제 활을 쏘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보니 재미를 느끼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을 넘어서면 비로소 국궁의 진짜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1년 가까이 국궁을 이어오며 이재훈 매니저가 터득한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 '힘으로 맞히려 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과녁을 맞혀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와 팔에 힘이 들어갔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좋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지금은 호흡과 자세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더 집중한다. 화살이 자연스럽게 날아갈 수 있도록 몸을 쓰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국궁은 '한 번의 기막힌 한 발'보다 '흔들리지 않는 반복'이 더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이러한 태도는 업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정성이 쌓여 세상이 바뀐다'라는 영화 <역린>의 대사를 떠올린다. 그는 국궁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자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준다고 믿고 있다.
"국궁은 제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줬습니다. 무엇보다 꾸준함의 결과는 계단처럼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을 배웠죠.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해나가면 결국 더 큰 결과로 돌아온다는 것을, 국궁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과녁 너머를 향해 이어가는 도전
회사에서는 다양한 사람과 협업하며 빠르게 판단해야 하지만, 국궁장에서는 오롯이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서로 다른 환경이지만 공통된 원칙은 하나다. 급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사대 뒤에서 배운 그 감각은 모니터 앞에서도 살아 움직인다고, 이재훈 매니저는 담담히 말했다. 그의 목표는 9단 명궁이다. 국궁은 서두른다고 해서 빨리 느는 운동이 아니다. 천천히, 오래 즐길수록 깊이가 쌓인다. 오늘도 그는 욕심보다 꾸준함으로 과녁 너머의 자신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다.